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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고려 아미타불도 阿彌陀佛圖 - Gold powder and color on silk - 56.2☓100.0cm

by 주해 2022. 11. 17.

2019-02-28 15:21:34

 

 

 

여래는 6각으로 짐작되는 대좌 위의 연화대좌에 정면을 향하여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추고가부좌한 자세로, 왼손은 배 앞쪽에,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었는데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맞댄 형상이다.

착의법은 치마와 대의를 입고 그 위에 가사를 걸쳤는데, 왼쪽 가슴에는 속옷을 묶은 삼각형의장신구가 있고 복부에는 치마를 묶은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검게 변색되어 명료하게보이지는 않지만 방형에 가까운 형상이고 머리 위의 육계, 입술, 눈 그리고 눈썹의 표현 기법은파악이 가능하다.

이 그림은 손의 형상과 기존의 고려불화와 비교하여 볼 때 구름에서 솟아 오른대좌에 앉아 극락정토에서 설법하시는 모습을 표현한 ‘독존 아미타여래도’이다.이 아미타여래도는 신체부의 엷은 윤곽선, 가슴의 만자문, 손바닥의 법륜문, 가슴의 삼각형 장신구 등몇몇의 구성요소만으로도 고려불화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그림은 붉은색과 녹색 안료를 농담의변화 없이 사용하고 그 위의 공간을 남기지 않을 만큼 금으로 문양을 가득 채우는 전형적인 고려불화기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가사의 둥근 연화무늬는 당초원문과 더불어 고려불화임을 입증하는 중요한단서이다.이 아미타여래도는 현재 일본의 이시바지石馬寺에 전해지고 있는 독존의 약사여래도와 비록 존명은다르지만 본존과 가사의 형상은 물론 구름 위에 놓인 듯한 대좌와 그 구성 방법이 거의 같다.

따라서 이 그림은 제작시기도 이시바지의 그림과 거의 같은 14세기 전반으로 보여진다. 그러나이시바지 그림은 몸체부가 금니이며, 가사의 중심 문양이 이 그림과는 달리 당초원문이다.또한 이 그림은 이시바지와 비교해 볼 때 오른 팔꿈치 부분의 금으로 그린 구름과 봉황문이 문양이 없는부분과 명료하게 대비된다. 즉 이는 이 아미타여래도가 기존의 그림을 모본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변형을 시도하는 고려불화의 일반적 경향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현존하는 고려시대 독존의 아미타여래도는 1306년 네즈根津미술관 그림과 교쿠린인玉林院의그림만이 전해질 만큼 아주 귀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아미타여래도는 비록 그다지 큰 화면은아니고 일부의 손상과 변색 그리고 약간의 보필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문 여래상이란 점,고려불화의 전형적인 표현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다.- 정우택참고도판도쿄 네즈미술관 소장 아미타불도현 출품작과 같이 좌대 위에 결과부좌한 아미타불 도안을 갖춘 도쿄 네즈미술관 소장 아미타독존도이다.1306년 조성된 높이 162cm의 불화로 현 출품작보다 크기가 큰 편이며 폭 또한 1미터에 달한다.

대좌 양측에 금니로 쓴 화기에 시주자인 권복수의 기원이 적혀있는데, 당시 북경에 가 있던 충렬왕,충선왕, 충선왕비의 빠른 귀환과 시주자 자신의 극락왕생에 대한 바람이 적혀있다. 연화대좌와가사의 문양작식에서 몇 군데 차이를 보이나 전반적인 틀은 출품작과 동일한 모본을 토대한 것으로 보인다.高麗仏画 香りたつ装飾美(泉屋博古館, 根津美術館 2016), p.36, pl.6.교토 교쿠린인 소장 아미타불도-일본 중요문화재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아미타불도이다. 교토의 유명 사찰 다이토쿠지의 부속사찰인교쿠린인에 소장되어 있으며 고려불이 아닌 두 점의 협시불과 함께 소장되어 있다. 아미타불의 족자뒷면에 석가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작품이 일본으로 건너간 후 현지에서 석가로 인식해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로 갖추고자 추가 제작해 함께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 출품작보다연화대좌가 높게 조성되었고 영락문 위주로 장식되어 표현의 차이가 있으나 역시 모본의 존재를추정케 한다.고려불화대전(국립중앙박물관, 2010), p.64, pl.16오사카 이시바지 소장 약사여래도현 출품작과 가장 유사한 양식과 크기를 갖춘 석마사 소장 약사불이다.

존명이 다르나 표현 양식과화면구성에서 가장 근접한 모습을 보이며 대좌 밑의 운문이나 얼굴의 표현법에 있어서도 동일 양식을보인다. 특히 가사의 형상과 대좌의 구성이 몇 군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흡사한 양상으로흐르고 있어 본 출품작의 조성시기를 14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는 비교군 이기도하다.현재 일본의 도록에 기재된 존명은 아미타여래로 기재되어 있으나 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약사여래불로 추정된다.高麗仏画(朝日新聞社, 1981), pl.12.

 

참고 문헌高麗仏画 香りたつ装飾美(泉屋博古館, 根津美術館 2016)고려불화대전(국립중앙박물관, 2010)유마리⋅김승희, 한국 美의 재발견7 불교회화(솔출판사, 2005)高麗仏画(朝日新聞社,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