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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백자대호 白磁大壺 , 43.7☓59.7(h)cm , JoSeon Period

by 주해 2022. 11. 14.

2018-06-15 21:18:53

 

 

 

 

 

현존하는 예가 아주 드물고 상태가 완연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기에 현대의 우리가 대형 백자준을 감상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60cm에 육박하는 크기와 유백색을 띤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대형 백자는 더더군다나 그러하다. 이번에 공개되는 백자준은 제작시기가 18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제작 기량의 곳곳에서 특별히 인상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이는보편적인 대준과 같이 몸통 중심 밑에 이어 올린 자국이 안팎으로 나타나지만 전체 양감은 18세기 후기 분원시대의 대준에 비해 눈에 띠게 늘씬하고 건장한 면모를 보이는 한편 저부로 좁아지다가 끝에서 살짝 반전하는 17세기의 고전적 매력도 갖췄기에그러하다.

구연부, 준의 입 부분은 칼자국이 거의 없이 자연스럽게 반전해 놓은 상태이며 표면 질감도 부드러워 다른 작품에서확인되는 각 진 구연과 차별이 되고 있다. 입술을 외반한 모습과완만한 어깨의 둥글림, 그리고 전면에 눈에 띠게 드러나는 나선형의 성형 흔적 등은 이 백준이 기존 대준에서 보이는 권위적이며 장엄한 정서와는 다른 독특한 감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바닥 굽깎기와 유약의 엉긴 상태, 일부 물러앉은 굽의접지면의 제반 현상들은 분원시대의 경향과는 분명히 차별화되고 있으며 특히 태토의 결백하고 정선됨 역시 분원리 분원 이전의 모습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 백자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이번 출품작과 같이 높이 60cm에 육박하는 준 樽 항아리이다. 이러한 대형 준은 대례 大禮 와 같은 국가 행사에서 왕실의 절대적 권위와 장엄함을 상징하는 특별한 예기 禮器 로 별도 제작되기 때문에 현존하는 예가 아주희소한 편이다.

대준 다음 큰 항아리는 달항아리라는 이름으로이미 잘 알려져 있는 둥근 백항 白缸 으로 최대 높이 45cm 정도의 규모이며, 이 경우 임금 전용의 대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계가 낮고 용처도 다양하여 수량도 넉넉했던 것 같다. 일례로, 인조16년 1638 음력 10월 장열왕후 책봉에 따른 가례 嘉禮 를 준비하면서, 당시 추운 동절기로 분원 백자제작이 불가하여 사옹원에 보관된 임금 전용의 대준을 제외하고 백항 한 쌍을 선택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왕실의 위계질서에 따라 의례용 예기에도 엄격한 차등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준과 백항의 위치와 질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전체 조형은 18세기전기로 알려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백자청화용준(높이 54.0cm)>(도1) 계통 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앞선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의 동원 기증품<백자철화용준(높이 57.5cm)>(도2)과 조형적 연관관계에 있는 것 같다.

이외에현재 알려진 대형 백준은 이병창 기증품 <백자소문대준(높이54.7cm)>(도3)로서 짧고 반전된 구연에서 출품작과 형태적 유사성을 찾아 볼 수 있다.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는 한국미의 본 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백자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듯 한 느낌이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수룩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하면 심미에 대한 건강한 태도가 아니라고 할 사람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선자기의 아름다움은 계산을 초월해서 이러한 설명이 필요하리만큼 신기롭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혜곡 최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