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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문화 . 시사

70년 포로 앞 우리는 죄인.

by 주해 2022. 11. 28.

2020-06-26 08:04:3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6/2020062600004.html

 

[만물상] 70년 포로 앞 우리는 죄인

만물상 70년 포로 앞 우리는 죄인

www.chosun.com

 

2010년 여든넷인 국군 포로가 60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우리 국민에게 편지를 썼다. “7·4 공동성명(1972년)이 나오고 적십자 회담을 할 때마다 행여나 기대를 걸었지만 모두 속았다. (북에서 60년은)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애끊는 눈물의 세월이었다”고 했다. 자력으로 탈출한 국군 포로는 10년 전 그가 마지막이다. 스물에 포로가 됐더라도 지금 아흔이다. 귀환한 국군 포로 80명 중에는 23명이 생존해 있다.

▶2017년 여든여덟인 국군 포로가 중국에서 보냈다는 '탄원서'를 본 적이 있다. 자기 군번과 입대 날짜를 적었고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고향에 가려고 하니 도와주시기를 탄원합니다"라고 했다. 주름이 깊게 팬 얼굴 사진도 동봉했다. 이분은 여러 사정으로 다시 북으로 돌아갔지만 아직 국군 포로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추정한 국군 실종자는 8만2000여명이다. 그런데 북이 송환한 국군 포로는 8343명뿐이다. 북에 억류된 수만 명의 포로들은 노예처럼 살았다. 불발탄 해체하다 죽고, 광산 유독가스에 숨 막혀 죽었다. 손가락이 잘렸는데도 곡괭이를 들어야 했다. 국군 포로를 돕는 인권단체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이제 230명 정도만 생존하신 걸로 추정한다"고 했다. 정말 시간이 없다.

▶국군 포로 유영복씨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북에서 TV로 봤다. 두 정상이 포옹하는 걸 보고 이제는 국군 포로들도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6·15 선언엔 국군 포로의 'ㄱ'자도 없었다. 꿈이 깨지자 죽을 각오로 탈북했다. 2004년 국군 포로 한만택씨가 중국에서 강제 북송됐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씨 가족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죽은 자가 살아오는 기적'을 부탁하는 편지를 썼다.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은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지에 남겨 놓지 않는다. 유해라도 데리고 온다. 그런데 한국은 1998년 사지(死地)를 벗어난 국군 포로가 도와달라는 전화를 했더니 현지 대사관 직원이 야멸치게 끊어버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세 번이나 만났지만 ‘국군 포로’ 얘기를 꺼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국가를 지키려다 적지에 남겨진 국군 포로들은 70년째 남쪽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정부가 구해줄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이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 앞에 모두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