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3 22: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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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世音菩薩像
汾院瓷窑之朝鮮中葉精製品 久經伽藍香火 玆歸于 造龕而供養焉
願普種善因早證妙果
丙寅 南至日 吳世昌 盥薰題記
관세음보살상
조선 중기 분원에서 제작한 정품이다. 오랫동안 가람에서 사용해왔는데
지금 ■■■로 보내며 함을 만들어 봉양하는 바, 부디 온 세상에 선인을
널리 펼치고 오묘의 결과를 일찍이 증명하기를 기원한다.
병인년1926 남지일동짓날에 오세창이 손을 씻고 향불을 피우며 쓴다.
넓게 표현된 장방형의 얼굴과 뚜렷한 콧대, 간소화 된 가사 등 조선 후기 불상의 면모를 갖춘 관음보살좌상이다. 머리는 이마와 중앙계주의 경계에 몇 가닥의 나발을 둘러 마무리하고 얼굴은 음각으로 표정을 잡아 입체감을 두되 날카롭지 않도록 양감에 신경 쓴 모습이다. 목에 주름을 잡고 두 팔은 단전으로 모아 선정인을 갖춘 손을 묘사했으며, 상대적으로 좁은 어깨에서부터 가슴 좌우로 법의를 걸쳐 가부좌를 튼 무릎까지 하나의 조형적인 흐름을 완성했다. 물론 상단과 하체, 관절과 수인의 경계는 명확하며 가슴에 묶은군의의 주름은 장식적이기까지 하다.조선은 유교를 숭배하던 나라였다. 알려져 있다시피 숭유억불로 인해 불교는 조선의 이념과 사상을 대변하는 종교는 아니었지만 왕실과 민간발원의 불교예술품이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었던 것은 민간신앙으로서 불교의 위상이 여전히 높았음을 증명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본 백자관음상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특이한 점은 금사리나 분원가마 백자기중 불상은 지금껏 발견된 예가 없다는 점이다.
청화나 진사, 철화로 자기에 도안화된 불교문양은 더러 존재하지만 이처럼 백자로 제작된 불상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1926년 위창 오세창선생의 배관에는 이 불상이 분원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적혀있다. 당시 한 사찰에서 보관해오다 어딘가로 봉양을 했다고 적혀있지만 누구에게 전한 것인지 어디로 봉양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인위적으로 지워져 있어 파악이 어렵다.
아마도 위창의 배관 이후 봉안 되었던 곳에서 다음 소장자에게 넘어가며 지워졌을 것으로 사료된다. 배관을 차치하더라도 관음상은 오롯이 분원백자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정제된 태토와 다룬 수법, 고르게 녹은 유약은 분원 전성기의 면모를 보여주며 잡티 없는 피부는 갑번匣燔을 씌워 제작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유약을 입혀 제작해야 하는 자기의 특성상 세밀한 묘사나 문양대의 구분이 유약 편차로 인해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위 작품은 관음의 표정이나 가사의 주름이 명료한 것이 특징이다.작품은 불화와 여타 불교조형물처럼 왕실 발원으로 분원에서 제작되어 사찰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에 의해 사찰을 벗어났고 손이 바뀌며 일본에 건너갔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당시 의 모습 그대로 고국에 돌아왔으니 그 희소성과 더불어 세상에 선인善因이 가득하길 염원한 위창 선생의 바램마저 품은 귀물로 다뤄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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