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피터스(Clara Peeters·1584~1657)는 정물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17세기 네덜란드 미술계에서도 특별히 탁월한 기량으로 명성을 쌓았던 화가다. 여성이 전문 분야 훈련을 받거나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에 이름을 날렸으니, 성공에 이르기까지 갈등도 많았겠고, 그만큼 자기 성취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을 법하다.
클라라 피터스, 치즈와 아몬드: 프레첼이 있는 정물화, 1615년, 나무판에 유채, 35x50㎝,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그림 속 청화백자, 갈색 주전자와 칼 등은 피터스의 다른 작품 몇 점에도 똑같이 나온다. 세밀하게 조각한 칼은 당시 흔한 결혼 예물 중 하나였다. 그 칼 손잡이에 화가 이름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으니, 이는 그림에 서명을 남기는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녀의 물건이었을 수도 있다. 어두운 바탕을 배경으로 딱딱한 빵인 프레첼과 윤기 흐르는 말린 과일, 투박한 치즈 겉면과 물결 모양 칼로 얇게 저며 둔 버터, 투명한 유리 잔 등 서로 다른 사물의 질감이 저마다 빛을 받아 도드라진 이 그림은 나무판에 물감을 칠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화면 하단, 나무 테이블 모서리가 칼에 찍혔는지 홈이 파였고, 치즈를 얹은 은접시 테두리에는 미세한 흠집이 많다. 이처럼 사물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화면에 온전히 담으려는 화가의 의지는 놀라운 자화상을 남겼다. 피터스는 주전자의 반짝이는 작은 금속 뚜껑에 거울처럼 뚜렷하게 비친 콩알만 한 자기 얼굴까지 그려뒀던 것이다. 넓은 이마, 뚜렷한 눈과 코가 뚜껑의 굴곡을 따라 두 번 비친다.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는 것이 화가의 사명이라면 피터스는 그 사명을 치열하게 완수한 책임감 있는 직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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