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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죽음 앞에 평등...윌리엄 아돌프 부게로(1825~1905:프랑스)

by 주해 2022. 11. 30.

2020-09-08 05:47:06

윌리엄-아돌프 부게로 '죽음 앞에 평등', 1848년, 캔버스에 유채, 141 × 269㎝,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황량한 벌판에 젊은 남자가 잠을 자듯 반듯하게 누워있다. 그 위로 검은 날개를 편 죽음의 천사가 바람처럼 날아들어 흰 천으로 그를 덮는다. 수의(壽衣)다. 뜨거운 피가 흐를 것처럼 건장한 육체지만 이미 생명이 빠져나간 다음이다. 온기를 잃고 창백한 초록이 번져가는 하늘도 이승의 하늘이 아닌 것이다. 프랑스 화가 윌리엄-아돌프 부게로(William-Adolphe Bouguereau·1825~1905)는 1848년 이 그림을 완성하고 ‘죽음 앞에 평등’이라는 제목을 달면서 ‘죽고 나면 살아생전 선했는지 아닌지는 무의미해진다’는 노트를 남겼다.

1848년 프랑스에서는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시민과 노동자들의 2월 혁명을 시작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제2 공화정이 성립되며 선거권이 확대됐다. 그러나 부게로가 말한 평등은 보통선거나 사회변혁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보수적이고 신실했으며 무엇보다도 하루빨리 성공해서 대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고작 23세의 청년이자 학생이었다. 최고 권위의 파리 살롱에 처음 작품을 전시하면서 그는 고전적인 인체, 매끄러운 마감, 안정적인 구도에 ‘죽음을 기억하라’는 전통적 교훈을 얹은 안전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노력형 인재였던 그는 마침내 당대 가장 위대한 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작품은 물감이 다 마르기도 전에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부게로는 말년까지 일주일에 엿새, 새벽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다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가 80세에 심장병으로 사망했을 때는 온 프랑스가 애도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닥친다는 면에서 평등하나, 어디서 어떻게 죽는지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