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1 21:32:48
불감 佛龕 이란 불상을 안치하는 감실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 당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후에 주로 만들어졌다. 재료는 금동제, 은제, 나무 등 다양하며 특히 금동제 불감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에만 등장하는 시기성을 지닌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까지의 불감은 대부분 기와지붕이 묘사된 전각형 殿閣形 의 건물 형태로서 내부에 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지붕 쪽의 마루 중앙부나 귀퉁이 등에 고리가 달려있는 예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곳을 연결하여 들고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추정된다.
이 불감 역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금동 불감의 귀중한 사례로서 이와 거의 흡사한 불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앞 쪽의 양쪽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여 내부에는 현재 삼존불이 안치된 상태이다.문 안쪽과 불감 내부에는 타출기법 打出技法 을 사용하여 조각들은 도드라지게 양각시킨 도금판을 부착시켰는데, 정면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편에 합장한 채 몸을 본존 쪽으로 약간 돌린 보살입상, 그 주위의 승려들의 군상 群像 들이 3단으로 배치되었다. 이 본존 좌우측 내부 면에는 각각 사자와 코끼리를 탄 문수와 보현보살을 타출시켰고 문 안쪽 면으로는 두 구의 인왕상 仁王像 을 역동적인 자세로 조각했다. 또한 천장에는 구름 속에서 용 두 마리가 서로 보주를 휘감은 모습을 다뤘으며 바깥쪽의 불감 측면에는 각각 지물을 든2구씩의 사천왕상과 후면에는 합장을 하거나 지물을 든 도합 6구의 신장입상을 점을 찍어 시문하는 연점각 連點刻 으로 표현했다.
문 앞쪽에는 칠보문을 빽빽이 시문하였고 문을 여닫도록 만든 경첩까지 정교하게 조각했다. 그리고 불감 뒤판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의 것이 청동인데 비해 금동으로 이루어졌고 신장의 수도 6구이며 문양이 화려하다. 불감의 지붕도 맛배가 아닌 팔작지붕을 묘사하였으며 용마루 좌우편에는 작은 치미와 잡상까지 장식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불감 하부에 두 개의 간주 기둥을 세우고 하대에 방형판을 연결시켜 이 하대에 불상의 대좌처럼 연판문을 정교하게 새긴 점이다. 아울러 내부에는 하대의 대좌로 연결된 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어 구례 천은사 泉隱寺 에 소장된 금동 불감과 마찬가지로 원 상태의 불상이 봉안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삼존불의 조성 시기는 그보다 조금 앞선 고려 전·중기 작품으로 보여 불감과 함께 조성된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이 불감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구례 천은사의 불감과 거의 유사한 형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정교함이 뛰어난 점, 비록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구례 천은사 소장품처럼 봉안 불상을 갖추고 있고 부분적으로 약간의 녹이 덮여 있지만 상태가 거의 완벽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큰 고려 불감의 새로운 일례로 평가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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