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1 21:30:11
불상:54.5☓36.8☓69.0(h)cm, 21.5☓14.5☓27.2(h)in
화관: 20.5☓19.0☓18.2(h)cm, 8.1☓7.5☓7.2(h)in
건칠불은 일종의 지불로서, 삼베 혹은 종이 위에 옻칠을 두껍게 발라 건조시킨 뒤 다시 겹겹이 그 과정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 제작한다.
때문에 무게는 목조불에 비해 훨씬 가볍고 위급시에 쉽게 피난이 용이했으며 재질의 특성상 세밀한 조각과 묘사가 가능했다. 문헌에 따르면 이 기법은 중국 당나라 후기 9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졌으며 고려와 일본에 전파되었으나 일본은 건칠불 제작이 성행한 반면 국내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값비싼 칠이 대량으로 소모되기 때문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건칠불의 조성시기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인 것으로 보아 한시적으로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건칠불로 발견된 것은 약 15점 내외로, 짧은 제작기간을 반영한다 하더라고 전하는 작품이 극히 적은 상황이다. 불상의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기존에 목조불로 알려져 있던 것들이 하나 둘 건칠불로 발견되었지만 아직 그 수량은 현저히 적기에 각 작품들의 연구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출품작은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초기 건칠불로서 보관을 쓴 좌상형태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재질의 특성상 조형에 있어 부드러운 표현이 용이함에 따라 본 작품에서도 눈두덩이와 입가, 천의의 주름 등에서 양감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음각으로 형성된 옷 주름이 뭉치는 곳이나 턱과 목의 경계 혹은 팔꿈치의 접힌 부분은 칼로 조성하는 목조불일 경우 표면이 고르지 않거나 둔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여타 건칠불과 위 출품작은 그 경계가 명료하고 조성 중 양감을 덧대어 수정이 가능했던 만큼 볼륨감 또한 좋다.
얼굴의 미간 사이에는 백호가 존재하며 눈썹, 수염과 같은 터럭, 붉은 입술, 그리고 불상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눈동자를 채색해 마무리했으며, 도식화된 옷자락을 표현한 몸체는 통견의 법의를 두르고 복부에 승각기 끈을 드러내 놓았다. 일부 개금이 벗겨져 표면의 옻칠이 드러나는 가슴팍에는 영락장식을 과감히 생략했는데 이는 16세기 보살상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 나무로 제작해 분리가 가능한 보관은 얇게 만들어 투각 후 장식을 덧댔는데 두 연화문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초화문이 특히 유려하다. 수인을 맺은 두 손 역시 건칠이 아닌 목조로 제작했으며 수인은 하품중생을 갖추고 보관처럼 몸통과 따로 분리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좋은 편으로 이미 잘 알려진 장륙사, 파계사, 기림사 건칠보살상 등이 사찰 봉안용으로 지속적인 관리와 개금이 이뤄져 깨끗하고 금빛이 완연한 반면 현 출품작은 전면개금을 하지 않아 부분 부분 옻칠이 드러나고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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