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7 16:04:07
LITERATURE
松園秘笈(을지사, 1985), pl.19.유복렬, 韓國繪畵大觀(문교원, 1979), pp.942-944, pl.650.이당 김은호, 書畵百年(중앙일보, 동양방송, 1977), pp.60-61.韓國美術五千年(국립중앙박물관, 1976), p.141, pl.108.
작품설명
묵란도 제관에, 소취파발이라, 상해에서 그리다(素趣破發 題於申江)라고 하였고 이 폭에 또 포작영(蒲作英)이 첨서한 것은 신품이라 하겠다.- 수록처 회화대관 해설묵란으로야 완당(김정희)의 「우연사출란도」, 운미(민영익)의 「묵란도」를 꼽는다.- 수록처 서화백년 해설운미 민영익의 대표작으로 국가기관 전시 및 유수의 도록에 이미 그 판영이 수록되어 운미의 손꼽히는 걸작으로 칭송받는 묵란도다.
회화대관에 따르면 원진희 선생이 구장 했었던 작품으로, 운미가 중국에 망명 후 여러 서화가들과 교유하며 화격이 절정에 이르던 때에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좌측 하단에는 포화 작영作英이 신품이라 첨서해 놓았고 운미는 이 작품을 상해에서 남겼노라 화제를 남겼는데 중앙을 가로지른 묵란 한 포기를 염두한 듯 간섭을 최소화한 모습이다.
포화 작영은 운미보다 한 세대 위의 연배지만 운미와 친분이 깊었던 중국인 화가로, 운미의 그림에 제발을 남긴 것이 더러 존재한다.일체의 배경을 생략하고 화면 중앙에 고졸하게 피어난 난 한 포기를 배치했다. 난엽은 운미의 묵란 답게 비수의 변화 없이 곧고 담백하게 뻗었는데 운치 있게 찍어낸 꽃잎이 난의 흐름을 따라 이어져 고졸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단숨에 그려낸 화폭은 실로 명쾌하고 강직한 바, 종이 위에 먹이 오르기 전 공간과 구도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가슴 속의 심회를 풀어내듯 묵란을 펼치던 운미는 결국 한을 머금은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신품은 이렇게 우리 곁에 남아 그의 신념과 기상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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