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4 11:40:04
終日昏昏醉夢間 하루 내 술 취해 몽롱하게 지내다,
忽聞春盡强登山 봄 다 간다는 말에 애써 산에 오른다.
因過竹院逢僧話 절간에 들러 스님 말씀 듣고서야,
偸得浮生半日閒 덧없는 삶 반나절 여유를 얻는구나.
雪川 書 설천 서
洞庭湖西秋月輝 동정호 서쪽에 가을 달 밝고,
瀟湘江北早鴻飛 소상강 북쪽에 가을 기러기 난다.
醉客滿船歌白苧 배 가득한 취객들 백저가 부르며,
不知霜露入秋衣 가을 옷에 서리 이슬 젖는 줄 모른다.
雪川 書 설천 서
옅게 올린 채색과 담담하게 뻗은 필선으로 당나라 시인 이섭과 이태백의 시제를 화폭에 구현한 겸재 정선의 작품이다. 글은 설천이 적었노라 명시했으며 겸재의 서명과 낙관 또한 별도로 찍어 놓았다. 설천이란 인물에 대해 여러 추측을 해 볼 수 있는데 겸재시기 당대 유명했던 문인으로 이의병이나 이봉상을 언급할 수 있으나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기어린 필체로 보아 두 인물을 벗어난 새로운 인물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작품은 두 점 모두 관념산수로 시구에 걸맞는 내용을 소담하게 펼쳐내고 있는데 전하는 보존상태와 채색이 완연하다. 근래에 보기 드문 겸재의 채색화로 나무와 인물, 강가, 산세에 무리없이 색을 얹은 점이 인상적이며, 정황에 걸맞는 구성과 필선이 감탄을 자아낸다.
한 점은 당나라 이섭李涉의 시 「제학림사승사題鶴林寺僧舍, 학림사 요사에서 짓다」를 그려낸 작품으로 시구의 내용 중 절간을 찾은 고사의 모습을 표현했다. 중은 반가운 손님을 향해 안채로 안내하는 손짓을 취하고 고사는 데리고 온 시동과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으로, 늦은 봄 적막한 산골 오후에 오랜만에 들리는 인물들의 두런거림으로 생기가 도는 모습이다. 화면 곳곳에 촘촘히 채색을 했는데, 다만 산등성이에 여백으로 걸친 안개와 주제를 담은 인물들의 모습은 절제된 담채를 얹음으로 차등을 두어 주제의 부각과 상황의 설명적 요소를 극대화 시켰다.
또다른 한 점은 역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배족숙형부시랑엽급중서가사인지유동정陪族叔刑部侍?曄及中書賈舍人至游洞庭, 족숙 형부시랑 이엽李曄, 중서사인 가지賈至와 동정호에서 놀다」 5수 중 제 4수를 표현한 그림이다. 소상팔경 중 동정추월을 묘사한 작품으로 둥근 보름 달 아래 배타고 흥취를 즐기는 인물들의 묘사가 흥미롭다. 제학림사승사보다 채색의 사용을 더욱 줄였고 필요한 곳은 옅게 올렸으며 여백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서 보름달 뜬 어느 가을밤의 정취를 짙게 드리웠다. 특히 시구에 걸맞게 취기가 올라 이슬 젖는 줄 모르는 두 인물과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산등성이 위로 빼꼼 얼굴을 내민 보름달의 표현에 있어 필선을 간소화 하고 채색을 극도로 배제해 짙어가는 가을 강가의 아련함을 더해주는 모습이다.
작품은 한 수장가가 수집한 이래 3대에 걸쳐 보관하던 중 선보인 것으로 작품 곳곳에서 우리나라의 대수장가이자 서예가였던 인물들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소전 손재형의 인기가 적힌 상자, 그리고 작품 우측 하단에 찍힌 송은 이병직의 소장인이 그것이다. 작품은 마치 대련처럼 소담한 상자에 두 틀이 들어가 전해졌으며 300년 가까운 시간동안 매우 소중히 보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색과 필치에서 드러나는 내공뿐 아니라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높은 수준의 화격 또한 조선의 화성畵星 겸재 정선이기에 가능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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